11월 26일, 광저우 오토쇼의 폭스바겐 부스.
[더플라자글로벌 | 국제경제] 중국 시장에 진출한 서구 기업들이 과거와 전혀 다른 경영 환경에 맞닥뜨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한때 중국은 글로벌 기업의 대표적 현금 창출원이었지만, 지금은 기술과 속도를 시험받는 경쟁의 시험장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중국 경제 성장세 둔화와 함께 소비자들의 소비 성향이 합리적으로 변했고, 현지 브랜드들이 빠른 제품 출시와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앞세워 급부상하면서 시장 구도가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 중국의 중산층 확대는 루이비통(LVMH), 스타벅스, 나이키, 애플, 테슬라 등 서구 브랜드들의 고속 성장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현재는 다수 산업에서 중국 기업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스타벅스·폭스바겐, 중국서 고전
대표 사례는 스타벅스다. 중국 커피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현지 브랜드 루이싱커피가 급성장하면서, 스타벅스는 2023년 매출과 매장 수 모두에서 1위 자리를 내줬다. 결국 스타벅스는 중국 사업 지분 과반을 현지 사모펀드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변화가 뚜렷하다. 중국 전기차 업체 BYD는 2023년 폭스바겐을 제치고 중국 내 판매 1위에 올랐다. 반면 폭스바겐의 최근 분기 중국 판매량은 전년 대비 약 7% 감소했다.
폭스바겐은 중국을 “피트니스 센터”에 비유하며 “세계 어느 지역보다 자동차 산업 변화 속도가 빠른 곳”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회사는 ‘중국 내·중국을 위한(in China, for China)’ 전략을 내세워 중국 소비자 취향에 맞춘 차량 개발에 집중하고 있으며, 중국 합작사를 통해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과 자율주행용 칩 개발에도 나섰다. 저가형 전기차 모델을 출시하고 개발 주기를 기존보다 약 30% 단축해 현지 업체와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중국 떠나도 결국 중국 기업과 경쟁”
전문가들은 중국이 단순한 시장을 넘어 글로벌 경쟁의 ‘훈련장’이 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상하이 정책연구기관 후통리서치의 궈산 파트너는 “중국에서 경쟁하지 않아도 해외 시장에서 결국 중국 기업을 상대해야 한다”며 “혁신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서라도 중국에 남아 있거나, 중국의 경쟁 환경을 직접 경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설문조사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결과가 나왔다. 주중 미국상공회의소가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63%가 ‘가장 큰 경영 도전 과제’로 현지 중국 기업과의 경쟁을 꼽았다. 중국 기업들이 제품을 더 빠르게 시장에 출시하며 대응 속도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현지화·저가 전략으로 돌파 시도
다국적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전방위적인 전략 수정에 나서고 있다.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겔랑(Guerlain)은 젊은 소비층을 겨냥해 기존보다 가격을 낮춘 화장품 라인을 중국에 선보이기로 했고, 현지 아티스트와 SNS 플랫폼을 활용한 마케팅을 확대 중이다.
스웨덴 가구기업 이케아(IKEA)는 중국에서 150개 이상 인기 상품 가격을 인하하고, 1,600여 종의 신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소비자의 가격 부담을 줄이고 현지 수요에 맞춘 소형·실용 제품 비중을 늘린다는 전략이다.
P&G 역시 중국 전용 제품 개발과 현지 디지털 마케팅 강화를 통해 성과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중국 소비자를 겨냥한 미백 치약 등 맞춤형 제품도 공개했다.
일부 브랜드는 반등
모든 서구 기업이 부진한 것은 아니다. 미국 패션 브랜드 랄프 로렌은 최근 분기 중국 매출이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다. 화장품 업체 에스티로더 역시 9월까지 3개월간 중국 매출이 약 9% 성장했다. 도미노피자와 3M도 중국 시장에서 고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회사 측은 전했다.
“쉬운 돈의 시대는 끝났다”
WSJ는 “중국에서 단순히 브랜드 파워만으로 돈을 벌 수 있던 시대는 끝났다”며 “이제 중국 시장은 막대한 기회와 동시에 가장 가혹한 경쟁이 공존하는 공간이 됐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여전히 14억 인구를 가진 세계 최대 규모의 소비 시장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제 중국은 더 이상 ‘편한 시장’이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을 검증받는 최대 시험장”이라며 “혁신 속도와 현지화 역량이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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