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포터우에서 황허와 사막이 어우러진 풍경을 배경으로 남긴 기념사진. (사진: 이윤낙 발행인)
글•사진 이윤낙
2026년 9월 24일 - 10월 3일
톈진 → 소림사 → 화산 → 시안 → 공동산 → 퉁신 → 샤포터우 → 헝산 → 다퉁 → 청서릉 → 윈멍산 → 랑야산 → 톈진
길 위에서 다시 만난 중국
9월 24일 새벽 4시, 톈진(天津)을 출발했다. 혼자 자동차를 운전해 중국의 산과 역사 유적을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안양(安阳)을 지나 소림사로 향하고, 화산과 시안을 거쳐 간쑤와 닝샤까지 갔다가 산시성과 허베이성을 통해 돌아오는 길이었다. 10월 3일 오후 3시 30분 톈진에 도착할 때까지 총 3,726㎞를 달렸다.
이번 여행에서는 목적지에 도착한 뒤 충분히 걷는 시간을 갖고자 했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했지만, 자동차로 지역을 넘나들고 산길을 걸으며 만나는 중국은 늘 새롭다. 산의 모양과 건축물의 모습이 달라지고, 그곳에 남은 역사도 달라진다. 열흘 동안 중국의 자연과 문화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이어지는지 직접 살펴볼 수 있었다.
여행은 중국 지인이 빌려 준 창청자동차(长城汽车)의 WEY 차량과 함께했다. 전기와 휘발유 혼용의 이 상용자동차는 완전 자율주행이 장착되어 기사를 대동하고 다니는 것 같은 편안하고 안전한 운전이었다. 중국 자동차 기술의 첨단을 몸소 체험한 시간이었다. 목적지 사이에서는 긴 거리를 달렸고, 도착한 곳에서는 자동차에서 내려 내 발로 걸었다. 차창을 통해 바라보던 산과 유적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지도 위의 이름들이 구체적인 풍경으로 바뀌었다.
소림사 관광구 입구의 패방. 산과 사찰을 찾아가는 여정이 이곳에서 시작됐다. (사진: 이윤낙 발행인)
소림사 무술의 명성 너머, 천년 사찰의 시간
첫 목적지 소림사(少林寺)는 허난성(河南省) 덩펑(登封)의 쑹산(嵩山) 자락에 있다. 쑹산은 중국 오악 가운데 중악으로 불리는 산이다. 그 안에 자리한 소림사는 495년에 창건된 사찰로, 중국 선종 불교와 무술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영화와 무협소설을 통해 익숙해진 이름이지만, 실제로 찾아가면 무술의 명성 뒤에 오랜 불교문화와 산중 사찰의 시간이 함께 놓여 있음을 알게 된다.
소림사를 둘러볼 때는 정문과 주요 전각만 보고 돌아오기보다 주변 유적과 산길을 함께 걸어보는 것이 좋다. 전각의 배치와 처마, 돌계단과 오래된 나무를 차례로 살피다 보면 사찰이 산의 지형과 어떻게 어우러져 있는지 눈에 들어온다. 내가 찍은 사진에도 높은 계단 위 전각과 그 주변의 나무들이 담겨 있다. 널리 알려진 관광지이면서도, 조금 천천히 걸으면 산중 사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소림사의 전각과 돌계단. 산중 사찰의 공간 구성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 이윤낙 발행인)
석탑림과 달마동 걸으며 만나는 수행의 흔적
석탑림(塔林)은 소림사의 또 다른 얼굴이다. 역대 승려들을 기리는 탑들이 모여 있는 공간으로, 크기와 층수, 형태가 서로 다른 탑들이 나무와 풀 사이에 서 있다. 탑 하나하나를 바라보다가 전체를 둘러보면, 한 사찰의 역사가 여러 사람의 삶을 통해 이어졌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화려한 전각과 달리 돌탑들은 차분한 모습으로 긴 세월을 보여주었다.
달마동(达摩洞)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사찰 관광이 산행으로 이어졌다. 달마가 수행했다는 전승이 깃든 장소다. 그런 이야기를 알고 걸으면 동굴이라는 목적지뿐 아니라 그곳에 이르는 산길에도 관심이 간다. 바위에 둘러싸인 작은 입구 앞에 서니, 큰 전각과는 다른 수행 공간의 모습이 느껴졌다. 소림사 일대에서 등산과 관광에 보낸 시간은 일곱 시간이었다.
높이와 형태가 다양한 석탑들이 모여 있는 소림사 석탑림. (사진: 이윤낙 발행인)
바위에 둘러싸인 달마동 입구. 달마의 수행 전승이 깃든 장소다. (사진: 이윤낙 발행인)
화산 다섯 봉우리를 이어 걸은 서악
소림사를 떠나 다음으로 찾은 화산(华山)은 산시성(陕西省) 화인(华阴)에 있는 중국 오악의 서악이다. 허난의 쑹산에서 서쪽으로 이동해 화산에 닿으니 산의 인상도 크게 달라졌다. 화산은 가파른 바위벽과 날카롭게 솟은 봉우리, 좁게 이어지는 능선으로 유명하다.
화산을 이해하려면 다섯 봉우리의 특징을 알아두면 좋다. 서봉은 연화봉(莲花峰), 남봉은 낙안봉(落雁峰), 동봉은 조양봉(朝阳峰), 중봉은 옥녀봉(玉女峰), 북봉은 운대봉(云台峰)으로 불린다. 남봉은 화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며, 서봉은 절벽의 웅장함으로, 동봉은 일출을 바라보는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각각의 봉우리가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어 여러 봉우리를 연결해 걸을수록 화산의 특징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나는 서봉과 남봉을 둘러본 뒤 동봉과 중봉을 지나 북봉으로 향했다. 약 여섯 시간 동안 산길을 걸었다. 같은 산 안에서도 방향을 바꾸면 바위벽과 능선의 모양이 달라 보였다. 한쪽에서는 눈앞을 가로막던 봉우리가 다른 곳에서는 멀리 펼쳐진 산세의 일부가 됐다.
화산의 매력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전망과 봉우리 사이를 이동하는 과정에 함께 있다. 정상 한 곳에 오르는 것으로 끝나는 산행보다, 여러 봉우리를 이어 걸으며 산 전체의 구조를 살펴보는 여행에 가깝다. 절벽과 능선이 맞물린 풍경을 바라보면서 왜 화산이 중국의 대표적인 명산으로 꼽히는지 실감했다.
화산에서 내려와 시안(西安)으로 이동했다. 옛 장안으로 알려진 시안은 중국 고대사의 여러 시대가 겹쳐 있는 도시다. 이번 일정에서는 시안한인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린 뒤 진시황 병마용을 관람했다. 혼자 이어가던 여행 중 한국어로 예배드리는 시간이 반가웠고, 먼 길을 무사히 다니고 있음에 감사할 수 있었다.
화산 주변 능선의 아름다운 경치 (사진: 이윤낙 발행인)
병마용 흙으로 빚어 남긴 진나라의 군대
병마용(兵马俑)은 진시황릉을 구성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흔히 ‘병마총’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병마용은 황제의 무덤을 지키도록 배치한 흙으로 만든 병사와 말의 형상을 뜻한다. 거대한 능묘 유적 안에 실제 사람 크기의 병사와 말, 전차와 무기 등이 함께 남아 있어 진나라의 군사조직과 장례문화, 제작 기술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먼저 규모에 압도된다. 긴 대열을 이루어 서 있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시선을 뒤쪽으로 옮길수록 유적의 깊이가 드러난다. 가까이에서는 얼굴과 머리 모양, 옷과 갑옷을 살피게 된다. 멀리에서는 하나의 군대가 보이고, 가까이에서는 각 조각의 세부가 보이는 것이다.
병마용의 얼굴과 머리카락 표현은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대규모로 만들어진 유적이지만 개별 형상의 표현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발굴 구역에 줄지어 선 병마용. 복원된 형상과 유구가 함께 보여 유적의 규모를 실감하게 한다. (사진: 이윤낙 발행인)
병마용에서 이어진 역사 여행
관람할 때는 복원된 병사들뿐 아니라 발굴 구역의 상태도 함께 살펴보게 된다. 온전하게 서 있는 형상과 손상된 흔적이 한 공간에 놓여 있어, 유적이 오랜 시간 땅속에 묻혀 있었고 지금도 연구와 보존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병마용은 고대의 군대를 보는 장소이면서, 그 시간을 오늘로 되살리는 작업을 접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시안을 떠나 간쑤성(甘肃省) 핑량(平凉)의 공동산(崆峒山)으로 향했다. 공동산은 도교문화로 널리 알려진 명산이다. 황제가 광성자에게 가르침을 구했다는 전승이 있으며, 산의 자연경관과 여러 시대의 종교 건축이 함께 관광의 중심을 이룬다. 황성(皇城), 탑원(塔院), 뇌성봉(雷声峰) 등은 공동산을 대표하는 경관으로 소개된다.
병마용 형상의 배경 앞에서 남긴 기념사진. 발굴 현장 사진과 구분해 실었다. (사진: 이윤낙 발행인)
공동산과 퉁신 산중 문화에서 회족의 역사로
공동산 입구 (사진: 이윤낙 발행인)
화산이 바위와 절벽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면, 공동산은 숲과 산중 건축이 어우러진 모습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산길을 따라 움직이며 건축물과 주변 지형을 함께 보는 것이 이곳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나는 공동산에서 올라가고 내려오는 길을 모두 도보로 걸었다. 다섯 시간 동안 내 발로 산을 오르내렸다. 산중 건축은 평지에 세운 건물과 다르게 다가온다. 그곳까지 자재를 옮기고 지형에 맞춰 공간을 만들었을 사람들의 수고를 생각하게 된다. 산길을 직접 걸으면 건물의 모습뿐 아니라 그 위치가 가진 의미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공동산 이후에는 닝샤(宁夏)의 퉁신(同心)으로 이동해 청진대사(同心清真大寺)를 찾았다. ‘청진사’는 중국어로 이슬람 사원을 가리킨다. 퉁신 청진대사는 닝샤에 남아 있는 오래된 이슬람 사원 가운데 하나로, 중국 전통 건축의 형태와 이슬람 문화가 함께 나타나는 유적이다.
이곳의 특징은 기와지붕과 처마를 갖춘 중국식 건축에서 이슬람 사원의 모습을 만난다는 점이다. 돔과 높은 첨탑으로 대표되는 다른 지역의 사원을 떠올리면 더욱 흥미롭다. 중국의 오래된 이슬람 사원에는 목조 건축과 중국식 공간 구성, 아랍어 장식 등이 함께 나타나는 사례가 있으며, 퉁신도 이런 문화적 결합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소림사에서 시작해 공동산과 퉁신까지 이동하는 동안 서로 다른 종교문화가 이어졌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말 안에 여러 지역과 민족의 삶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확인했다.
중국 공동산(崆峒山)의 고풍스러운 전통 건축물과 소나무 너머로 산 능선이 펼쳐져 있다. 돌계단과 석조 난간이 산세와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사진: 이윤낙 발행인)
중국 공동산(崆峒山)의 사찰 외벽에 방문객들의 소원을 적은 나무패가 붉은 끈에 매달려 빼곡히 걸려 있다. 가족의 건강과 평안, 행복을 기원하는 글귀마다 소박한 바람이 담겨 있다. (사진: 이윤낙 발행인)
퉁신 방문 때 촬영한 기와지붕과 문루 형태의 건축물. 지역의 전통 건축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이윤낙 발행인)
샤포터우 사막과 황허가 만나는 풍경
다음 목적지 샤포터우(沙坡头)는 닝샤 중웨이(中卫)에 있다. 이곳에서는 여행의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사찰과 산길, 오래된 도시를 지나 드넓은 사막 앞에 섰다.
샤포터우의 가장 큰 특징은 텅거리 사막(腾格里沙漠)과 황허(黄河), 주변 산지와 녹지가 한 지역에서 만난다는 점이다. 사막의 넓이만 보는 곳이 아니라 사막과 물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살펴보는 관광지다.
모래언덕에서 바라보면 굽이진 모래 능선이 이어진다. 시선을 황허 쪽으로 옮기면 흐르는 강과 녹지가 보인다. 가까운 거리 안에 건조한 사막과 물이 흐르는 풍경이 함께 놓여 있어, 서로 다른 자연환경이 만나는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이어지는 샤포터우의 모래언덕. 넓게 열린 사막의 풍경이 펼쳐진다. (사진: 이윤낙 발행인)
푸른 하늘 아래 황하(黄河)의 황토빛 물결 위로 관광객을 태운 뗏목들이 지나고 있다. 강 건너 펼쳐진 모래 언덕과 강변의 녹지가 어우러져 이색적인 풍경을 이룬다. (사진: 이윤낙 발행인)
낙타 위에서 바라본 모래언덕
이곳에서는 낙타 체험도 했다. 낙타 등에 앉아 모래언덕을 바라보는 경험은 산길을 걷는 것과 달랐다. 산에서는 능선과 봉우리가 공간을 나누지만, 사막에서는 멀리까지 열린 시야와 반복되는 모래의 곡선이 눈길을 끈다. 내가 남긴 사진에도 넓게 펼쳐진 사막과 낙타 위에서 손을 들어 보이는 모습이 담겨 있다.
샤포터우에는 모래썰매와 사막 탐험, 황허를 활용한 체험 등 여러 관광 프로그램이 알려져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사막 경관을 둘러보고 낙타를 타는 경험을 중심으로 시간을 보냈다. 황허와 모래언덕을 함께 바라본 장면은 긴 여정 가운데서도 특히 또렷하게 남았다.
사막에서 낙타를 타며 남긴 기념사진. 산행과는 다른 방식으로 모래언덕의 풍경을 경험했다. (사진: 이윤낙 발행인)
중국 샤포터우(沙坡头) 사막에서 붉은 안장을 갖춘 낙타들이 모래 위에 앉아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푸른 하늘과 황금빛 모래 언덕을 배경으로 사막의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사진: 이윤낙 발행인)
중국 샤포터우(沙坡头)의 사막 전망 체험시설 ‘다모페이톈(大漠飞天)’. 비행접시 모양의 시설과 우주인 조형물이 황금빛 모래 언덕과 어우러져 이색적인 풍경을 이룬다. (사진: 이윤낙 발행인)
헝산과 다퉁 북악의 산길에서 고성의 밤으로
닝샤를 떠나 다시 긴 거리를 운전해 산시성(山西省)의 헝산(恒山)에 도착했다. 헝산은 중국 오악의 북악으로, 다퉁시 훈위안현(浑源县)에 있다. 앞서 서악 화산을 걸었던 터라 이번에는 북악의 산세를 비교해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헝산은 중국 북방의 이름난 산이자 도교문화가 깊이 남은 장소다. 절벽과 바위 지형을 활용해 세운 건축물들이 중요한 특징으로 꼽힌다. 산의 자연과 종교 건축을 따로 보기보다, 건물들이 어떤 지형에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살펴보면 이곳의 매력을 더 잘 알 수 있다.
나는 헝산에서 다섯 시간 동안 산행했다. 산길을 오르면서 주변을 보고, 다시 내려오면서 같은 풍경을 다른 높이에서 바라보았다. 자동차로 이동할 때는 순식간에 지나가는 지형을 산에서는 오랜 시간 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서악과 북악이라는 이름을 지도에서 아는 것과 두 산을 직접 걸어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헝산에서 내려와서는 다퉁(大同) 시내로 이동했다. 다퉁에서 처음 강하게 다가온 것은 고성의 야경이었다. 성벽과 누각이 조명을 받아 밤하늘 아래 또렷하게 드러났다. 사진에는 여러 색의 빛이 성벽을 따라 이어지는 모습이 남아 있다.
고성의 밤은 낮 동안 산에서 보낸 시간과 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오래된 도시의 형태에 현대적인 조명이 더해져 관광객이 밤에도 머물며 감상할 수 있는 풍경이 됐다.
중국 헝산(恒山)의 가파른 암벽 사이에 자리한 전통 건축물. 붉은 벽과 기와지붕이 울창한 소나무 숲과 어우러지고, 절벽에 새겨진 붉은 글씨가 눈길을 끈다. (사진: 이윤낙 발행인)
중국 헝산(恒山) 정상에서 기자가 해발 2,016.1m를 표시한 표석 옆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상 주변에는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정상 표석에서 사진 찍기 위해 1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렸다. (사진: 이윤낙 발행인)
중국 헝산(恒山)의 깎아지른 암벽과 울창한 소나무 숲이 웅장한 풍경을 이룬다. 절벽 아래 자리한 붉은 전통 건축물 너머로 산 능선과 굽이진 도로가 펼쳐져 있다. (사진: 이윤낙 중국특파원)
여러 색의 조명을 받은 다퉁 고성의 성벽과 누각. 낮의 산행 뒤 만난 도시의 밤 풍경이다. (사진: 이윤낙 중국특파원)
운강석굴 돌벽에 새겨진 거대한 불교미술
다퉁의 운강석굴(云冈石窟)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놀라운 유적 가운데 하나였다. 돌벽에 새겨진 거대한 불상과 수많은 조각을 보면서 규모와 정교함에 감탄했다. 약 세 시간 동안 둘러보았지만, 돌아와 생각해도 하나하나 더 오래 살펴보고 싶은 곳이다.
운강석굴은 주로 5세기 중반부터 6세기 초에 조성된 불교 석굴 유적이다. 유네스코는 252개의 동굴과 감실, 약 5만1,000기의 조각으로 이곳의 규모를 설명한다. 북위 왕조의 후원 아래 만들어졌으며, 중국 초기 불교미술의 중요한 성취로 평가된다.
이곳에서는 큰 불상만 바라보고 지나치기 어렵다. 거대한 형상을 보고 난 뒤 시선을 주변으로 옮기면 작은 조각들과 세부 장식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공간 전체가 조각으로 이루어진 듯한 밀도가 인상적이었다. 가까이에서 보아야 알 수 있는 세부와 멀리서 보아야 느껴지는 규모가 함께 있다.
운강석굴의 또 다른 의미는 문화 교류에 있다.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불교미술이 중국의 전통과 만나 지역적 특징을 갖춘 모습으로 발전했다. 대표적인 담요오굴(昙曜五窟)은 이런 초기 불교 석굴미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거대한 돌조각 앞에서 감탄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형식이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병마용에서 진나라의 조직력과 제작 기술을 보았다면, 운강석굴에서는 바위에 공간과 형상을 만들어낸 기술, 그리고 그 작업을 뒷받침한 신앙과 시대를 생각했다. 내 신앙과 다른 종교의 유적이지만, 그것을 남긴 사람들의 삶과 역사, 예술을 살펴보는 경험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
돌을 깎아 그처럼 거대한 공간을 만들고, 크고 작은 형상들을 정교하게 표현한 기술이 놀라웠다. 관광을 마친 뒤에도 그 규모와 세밀함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중국 다퉁(大同) 운강석굴(云冈石窟)의 거대한 석조 불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기자. 불상의 옷주름과 주변 암벽에 새겨진 작은 불상들이 정교한 조각 솜씨를 보여준다. (사진: 이윤낙 발행인)
중국 다퉁(大同) 운강석굴(云冈石窟)에서 관광객들이 석굴 관람을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암벽을 따라 이어진 석굴 입구와 층층이 솟은 전통 목조건축물이 눈길을 끈다. (사진: 이윤낙 발행인)
청서릉과 윈멍산 황실 유적을 지나 숲길로
다퉁을 떠나 귀로에 들른 청서릉(清西陵)은 허베이성(河北省)에 있는 청 왕조의 황실 능묘군이다. 청동릉과 함께 청 왕조의 장례문화와 건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명•청 황릉’에 포함돼 있다.
청서릉은 무덤 한 기만 보는 관광지로 생각하면 그 특징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황실 능묘에서는 능으로 이어지는 길과 문, 여러 건축물의 배치, 주변 자연환경까지 하나의 공간을 이룬다. 명•청 황릉을 통해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과 황실 권위, 건축과 자연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병마용과 운강석굴처럼 눈앞의 조각이 강한 인상을 주는 유적을 지나 청서릉에 이르니, 공간의 구성 자체에도 관심이 갔다. 무엇을 크게 세웠는지뿐 아니라 길과 건물을 어떻게 연결하고 주변 지형과 조화시켰는지가 관광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중국의 역사 유적을 보는 시선이 여행을 이어갈수록 조금씩 넓어졌다.
마지막 구간에서도 산행을 이어갔다. 먼저 허베이성 이현(易县)의 윈멍산(云蒙山)을 찾아 다섯 시간을 걸었다. 이현의 윈멍산은 베이징에 있는 동명의 산과 구분해야 한다. 이현 정부는 풍부한 식생과 푸른 숲, 산 아래 계류를 이곳의 특징으로 소개한다.
이번 여정에서 화산의 바위 봉우리와 샤포터우의 모래언덕을 보았다면, 윈멍산에서는 숲이 중심이 되는 산을 걸었다. 중국의 산을 몇 곳 다녀왔다고 한 가지 모습으로 묶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산행은 유명한 정상에 도착하는 일과 함께, 그 산을 이루는 숲과 길을 충분히 경험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중국 칭시링(清西陵)의 붉은 건축물과 황금빛 기와지붕이 푸른 하늘 아래 어우러져 있다. 관광객들이 조각된 석조 난간과 아치형 돌다리를 지나 경내로 향하고 있다. (사진: 이윤낙 발행인)
중국 운몽산(云蒙山) 국가삼림공원 입구의 돌담 너머로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와 푸른 산자락이 펼쳐져 있다. 맑은 하늘 아래 돌담 주변의 나무와 꽃들이 어우러져 산행의 정취를 더한다. (사진: 이윤낙 발행인)
랑야산 날카로운 봉우리와 항일전쟁의 기억
여행의 마지막 산은 랑야산(狼牙山)이었다. 지난해 등반을 한 경험이 있는 랑야산은 역시 허베이성 이현에 있는 산으로, 이름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연상시키는 바위 봉우리들이 특징이다. 가파른 절벽과 솟은 봉우리들이 산의 인상을 뚜렷하게 만든다.
랑야산은 자연경관과 함께 항일전쟁의 기억이 남은 곳이다. ‘랑야산 오장사’로 알려진 다섯 병사를 기리는 기념시설과 전시관이 있으며, 관련 전시에서는 당시 이 지역의 항일전쟁을 함께 다룬다. 내가 찍은 사진에도 기념탑이 담겨 있다. 산을 찾는 여행이 그 지역의 역사와 만나는 장소였다.
랑야산에서는 네 시간 동안 걸었다. 열흘 가까이 운전과 산행을 이어온 뒤였지만 마지막까지 산을 찾아 움직였다. 사진과 기록을 다시 살펴보니, 이번 여행은 여러 관광지를 방문한 여정이면서 동시에 각기 다른 산을 내 발로 걸어 비교해 본 시간이기도 했다.
랑야산 입구에서 바라본 시설과 뒤편의 바위 봉우리들. (사진: 이윤낙 발행인)
랑야산의 항일전쟁 기억을 전하는 기념탑. (사진: 이윤낙 발행인)
돌아온 길, 다시 펼쳐보는 중국의 지도
10월 3일 오후 3시 30분, 톈진으로 돌아왔다. 출발할 때 7,344㎞였던 계기판은 11,070㎞가 됐다. 그 사이에 소림사의 돌탑과 달마동, 화산의 다섯 봉우리, 병마용의 대열, 공동산의 산중 문화, 퉁신의 이슬람 건축, 사막과 황허, 헝산과 다퉁의 밤, 운강석굴과 청서릉, 윈멍산과 랑야산이 차례로 놓여 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중국의 넓이가 단지 거리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역을 옮길 때마다 자연의 모습이 바뀌고, 그 자연 속에 자리한 건축과 문화도 달라졌다. 산과 사막을 보는 눈, 사찰과 석굴과 황릉을 보는 눈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3,726㎞의 길을 달리고 여러 산을 걸으며, 오래 살아온 중국을 다시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무사히 돌아온 것에 감사하고, 직접 보고 걸을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돌아와 남은 사진을 한 장씩 살펴보니 다음에는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장소들이 보인다. 중국의 지도는 여전히 넓고, 그 안에서 만나야 할 풍경과 이야기도 많이 남아 있다.
[참고 자료 안내]
본문은 여행자의 여정 기록과 소감을 바탕으로 구성했다. 유적의 역사와 특징은 아래 자료를 참고했다.
소림사 역사: UNESCO, The Steles of Shaolin Temple
https://www.unesco.org/en/memory-world/steles-shaolin-temple-566-1990
병마용: UNESCO, Mausoleum of the First Qin Emperor
https://whc.unesco.org/en/list/441/
운강석굴: UNESCO, Yungang Grottoes
https://whc.unesco.org/en/list/1039/
청서릉: UNESCO, Imperial Tombs of the Ming and Qing Dynasties
https://whc.unesco.org/en/list/1004/
화산: 산시성 풍경원림협회, 화산 풍경명승구
https://www.sxfjyl.org/h-nd-49.html
헝산: 다퉁시 국제 포털, Mt. Hengshan
https://www.dt.gov.cn/english/placestovisit/202501/afed559499244929ac372bb36f5d0e4e.shtml
윈멍산: 이현 인민정부, 云蒙山
https://www.bdyixian.gov.cn/col/1673577921821/2023/01/16/1673851481681.html
샤포터우: 닝샤 문화관광청, 沙坡头旅游区
https://whhlyt.nx.gov.cn/jqjd/zws_66597/nxsptlyq/
랑야산: 허베이성 문물국, 狼牙山五勇士陈列馆
https://wenwu.hebei.gov.cn/system/2026/03/30/030379417.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