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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황문섭 기자의 소소한 이야기
  • 이다인 기자
  • 등록 2024-11-11 12:4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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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통도사를 찾았다.

무풍한송길을 천천히 걸어 통도사로 향하는데 새벽에 안개가 내렸다가 막 걷힌 듯 바닥과 솔잎들이 촉촉이 젖어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왜가리 두어 마리가 멀리 시흥에서 온 시골 방문객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요즘은 수학여행을 해외로 가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는 통도사로 수학여행을 왔었다.

그때 관광버스는 우람한 송림속 포장도로 달려 학생들을 주차장에 풀어 놓았는데, 개발로 입구가 변했나 싶었더니 다행히 그대로였다.

무풍한송로를 따라 걸으니 사찰이라 그런가? 마음마저 조용하다.

아직 이곳에는 가을 단풍이 막 절정을 지나고 있어 어쩌면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가을 풍경일지도 모르겠다.

통도사를 돌아보며 추억에 잠겼다. 수학여행을 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때 통도사라는 사찰이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오래된 고찰이라는 것뿐 알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관광버스에 실려 다니며 순전했던 친구들과 흑백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고찰을 둘러보다 대웅전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 너머로 탐스럽게 익은 홍시를 보고 사진을 하나 찍었다.

우리 인생도 저런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나는 잘하고 있나? 열매를 맺지 않고 영양 생장만 하다 시들어가는 갈대처럼 꺾여 썩어지지는 않을까?


나는 직업상 매일 사람이 살고있는 집을 방문하는데, 가끔씩 단정한 7, 80대 할머니들을 만나곤 한다.

다정스레 작업자를 대하는 그들의 모습이 고마워, 작업이 끝나고 짬이 생기면 짧은 대화를 시도해 보기도 한다, 요즘은 여성들이 아줌마가 되면 다들 사자처럼 변한다고 하는데, 할머니들은 내가 소년시절 기대했던 여성의 이름다운 감성을 소녀처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정말이지 기회가 된다면 조용한 찻집에서 데이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었다.


양산에서 동창생 황명순이를 만났다.

고딩시절 그녀와 등하굣길이 중첩된 참남배기(참나무배기) 구간을 지날 때 아주 가끔 명순이를 만나면 말을 걸었다.

내 기억에 명순은 사물을 해맑게 보는 투명한 소녀였는데, 졸업 후 20년 만에 부산에 사는 그녀를 서울 코엑스 무역센터에서 만나 코엑스 옆에 봉은사에서 사진을 찍어준 기억이 있다.

그때에도 명순은 해맑았고,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신감에 차 있었다.

다시 20년이 지나 만난 명순은 통도사의 단풍처럼 아름답게 성숙해 있었다.


데이트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건 순전히 내 탓인데 먹는 속도가 빨라 굳이 밥 한 공기를 더 시켜 먹었는데도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녀는 여전히 간호사로 일하고 있고, 요즘은 자신이 꼭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공부에 더 심취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기독교에만 그런 개혁의 움직임이 있는 줄 알았는데, 무분별한 목사의 배출과 검증없는 성경의 영해로 기독교가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성경대로만 믿자고 하는 개혁의 움직임이 일고있다. 불교계에도 초기 불교를 공부하자는 그런 개혁의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 새롭게 느껴진다.


메점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멍하니 사찰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냥 좋다 이런 자연이 ...

무풍한송로를 걸어 나오는 길은 들어올 때보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이 여행을 시작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무풍한송로 갓길에 소담하게 놓여진 봉헌탑이 있어 살펴보았다. 그리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봉헌탑에는 봉헌자의 이름을 새겨 두었는데, 이것은 헌금을 누가 얼마나 했는지 발표하는 모 대형교회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봉헌하면 이름을 새겨줄까?

이제는 자연을 훼손할 수 없어 바위에 이름을 새길 수 없으니, 봉헌 탑이란 구조물을 만들어 봉헌자의 감사한 마음을 새기는 것일 것이다, 다른 곳은 가보지 못해 잘 모르겠지만, 오래전부터 통도사에서는 봉헌자들의 이름을 계곡 바위에 새겨 기념한 것 같다. 입구부터 바위에는 수많은 이름이 새겨져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런데 잘 찾아보면 17세기 화가 김홍도의 이름도 있다.

내가 아는 화가 김홍도의 이름이 맞다면, 그는 통도사에 불화를 봉헌하지 않았을까? 어떤 불화였을까?

어쩌면 처음 어느 스님이 봉헌자의 이름을 새겨 봉헌자의 정성을 기억하자고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사실은 그 의도가 변질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이것 또한, 불교에서 말하는 삿한 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명순이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명순이를 만나면 그녀가 어떤 모습일까 설레이고 궁금했었는데 여전히 투명했다.

만나고 싶으면 언제라도 달려와 만날 수는 있겠지만, 살다 보면 만나기가 그리 녹녹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한 십 년이 지나 또 그녀를 만난다면, 식사보다는 등굣길을 걸으며 이야기하듯 산책 하면서 그녀의 투명한 이야기를 듣고 순둥이 소년처럼 벙긋거렸으면 ... 하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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