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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진 한인사회 35년, ‘기업이 만든 공동체’의 흥망
  • 이다인 기자
  • 등록 2026-05-07 1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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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천진한국상회 초대 사무국장 이성권 박사 인터뷰로 본 형성과 성장, 그리고 구조적 전환

“서울일보 이윤낙 중국특파원은 톈진한국상회 초대 사무국장을 지낸 이성권 박사를 만나 한중 수교 이후 35년간 이어진 톈진 한인사회의 형성과 성장, 그리고 최근 구조적 변화에 대해 들었다. 남개대와 북경대에서 학위를 받고 다년간 중국 대학에서 강의 한 이 박사는 톈진 교민사회의 태동부터 쇠퇴까지를 현장에서 지켜본 대표적 인물이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톈진한국상회 초대 사무국장 이성권 박사. (사진: 이윤낙 서울일보 중국특파원)

이 박사는 톈진 한인사회의 출발점을 “한중 수교 이전부터 시작된 기업 진출”로 규정했다. 실제로 1989년 첫 한국 투자기업이 들어선 이후, 1992년 수교를 계기로 기업과 인력이 본격 유입됐다. 그는 “당시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과 한국의 북방정책이 맞물리면서 톈진은 자연스럽게 한국 기업의 북방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노동집약형 산업 중심의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동시에 진출하면서 교민사회가 급격히 확대됐다. 초기에는 기업 주재원과 투자자가 중심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유학생, 가족 동반 이주, 자영업자 등이 더해져 공동체의 외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착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언어 장벽과 문화 차이, 사회적 네트워크 부족이 가장 큰 장애였다. 이 박사는 “초기 한인들은 중국어도, 현지 문화도 모르는 상태에서 들어와 한국인끼리 뭉치는 경향이 강했다”고 회고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품앗이식 공동체’가 형성됐고, 한인회·종교단체·향우회 등이 정보 공유와 생활 지원의 중심 역할을 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탄생한 조직이 바로 톈진한국상회다. 1990년대 초 ‘한국투자기업협의회’로 출발해 수교 이후 상회로 발전한 이 단체는 기업 지원과 정부 소통 창구 역할을 수행했다. 이 박사는 초대 사무국장으로서 “정책 정보 전달, 애로사항 해결, 한중 교류 확대”에 가장 중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톈진 한인사회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2000년대 중반이다. 당시 교민 수는 3만 명을 넘어섰고, 2010년 전후 일부에서는 7만 명 이상으로 보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한국국제학교, 교회, 식당, 상업시설 등 생활 인프라가 완비되며 사실상 하나의 ‘작은 한국 사회’가 형성됐다. “이 박사는 당시 한국 식당과 학원, 교회가 밀집했던 톈진 시내 일부 지역을 떠올리며 ‘거리에서 한국어만 들리던 시절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 박사는 “기업이 사람을 부르고, 사람이 다시 기업 환경을 개선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삼성, LG, 롯데 등 대기업 진출과 협력업체 확장은 교민사회의 양적·질적 성장을 동시에 견인했다. 교육, 문화, 종교, 체육 등 다양한 분야로 공동체 기능이 확장된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고, 점차 구조적 축소가 뚜렷해졌다. 가장 큰 요인은 기업 철수와 산업 구조 변화다. 이 박사는 “제조업 중심의 한국 기업이 줄어들면서 주재원과 가족도 함께 빠져나갔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한중 관계 변화, 코로나19 이후 인구 이동 감소, 항공 노선 축소, 비자 환경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2026년 현재 톈진 교민 수는 약 3000명 수준으로 급감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공동체 구조 자체의 전환이다. 과거 ‘주재원 중심 임시 사회’에서 현재는 다문화 가정, 장기 체류자, 전문직 인력 등이 포함된 ‘다원화된 사회’로 바뀌었다. 이 박사는 이를 “과객에서 정착민으로의 변화”라고 표현했다. 


젊은 세대 감소 역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학생과 청년층 유입이 줄어들면서 공동체의 활력이 떨어지고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앞으로는 단순한 인구 확대가 아니라, 전문성과 네트워크 중심의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톈진 한인사회의 미래에 대해 신중한 낙관론을 제시했다. “제조기지 시대는 저물었지만, 기술·문화·서비스 협력의 새로운 단계가 열리고 있다”며 “기업 활동이 다시 살아나야 교민사회도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톈진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수도 북경의 관문인 항구가 있으며 기후도 비슷해 한국기업이 진출하기에 최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도 했다.


이번 인터뷰는 한인사회가 단순한 ‘이주 공동체’가 아니라, 국가 간 경제와 정책, 문화가 맞물린 복합적 산물임을 보여준다. 톈진 한인사회의 흥망은 곧 한중 관계의 축소판이자, 글로벌 경제 흐름 속 재외동포 사회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 다음은 이성권 박사와의 일문일답”


인터뷰를 하고 있는 톈진한국상회 초대 사무국장 이성권 박사. (사진: 이윤낙 서울일보 중국특파원)

Q. 한중 수교 이후 톈진에 한국인이 본격적으로 유입된 시점과 배경은 무엇입니까?


A. 한국인의 톈진 진출은 1992년 한중 수교를 전후해 본격화됐습니다. 다만 그 이전인 1989년에도 이미 한국 기업이 투자에 나섰고, 약 10여 개 기업이 선행 진출해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수교 이후에는 정치적 제약이 사라지고 경제 협력이 확대되면서 기업과 인력이 빠르게 이동했습니다.


특히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과 1992년 덩샤오핑의 남방담화 이후 외자 유치가 강화된 점, 그리고 한국의 북방정책이 맞물리면서 톈진은 자연스럽게 한국 기업의 북방 거점으로 부상했습니다. 항구 도시이자 국가급 개발구(TEDA)를 갖춘 점도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Q. 초기 톈진 한인사회의 규모와 구성은 어떠했습니까?


A. 1990년대 초반만 해도 규모는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대부분 기업 대표나 주재원 중심의 소규모 집단이었고, 공동체라기보다는 비즈니스 네트워크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수교 이후 기업 투자가 급증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특히 1997년 IMF 전후를 기점으로 한국 기업이 대거 진출하면서 관리자, 기술자, 가족 동반 이주가 늘어났고, 유학생도 점차 증가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각 대학에 수백 명에서 천 명 이상 유학생이 등록하는 등 인적 기반이 확대됐습니다. 


Q. 초기 정착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A. 가장 큰 문제는 언어와 문화였습니다. 당시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어를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진출했기 때문에 행정 절차나 의료, 일상생활 전반에서 어려움이 컸습니다.


또한 생활 방식과 가치관 차이로 인해 현지인과의 교류도 쉽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한국인끼리 모이는 경향이 강해졌고, 이는 공동체 결속에는 도움이 됐지만 외부와의 교류를 제한하는 요인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인회, 종교단체, 향우회 등이 중심이 되어 정보 공유와 상호 지원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일종의 ‘품앗이 공동체’가 형성된 것이죠. 


Q. 톈진한국상회는 어떤 배경에서 출범했고,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A. 한국 기업이 늘어나면서 조직적인 지원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초 ‘한국투자기업협의회’가 만들어졌고, 수교 이후 ‘톈진한국상회’로 발전했습니다.


상회의 주요 역할은 기업 간 정보 공유, 정부 정책 대응, 애로사항 해결이었습니다. 저는 초대 사무국장으로서 행정기관과의 소통 창구를 만드는 데 주력했습니다. 세관, 세무, 공안 등과 정기적으로 교류하며 기업 활동 환경을 개선하려 노력했습니다. 


Q. 톈진 한인사회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언제입니까?


A. 2000년대 초부터 2010년대 초까지가 전성기입니다. 특히 2005년 전후가 정점이었습니다.

당시 교민 수는 3만 명을 넘었고, 많게는 7만~8만 명 수준까지 확대됐습니다.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생이 재학하는 톈진한국국제학교, 한인교회, 사찰, 성당 및 한국 식당, 상업시설 등이 갖춰지면서 하나의 완결된 생활권이 형성됐습니다.


기업 투자 확대가 곧 인구 증가로 이어졌고, 다시 생활 환경이 개선되면서 추가 유입을 부르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Q. 한국 기업 진출과 한인사회 성장의 관계는 어떻게 보십니까?


A. 매우 밀접합니다. 기업이 먼저 들어와 일자리를 만들고, 인력을 유입시키며 공동체 기반을 형성했습니다. 이후 공동체가 안정되면서 생활 환경이 개선되고, 이는 다시 기업 투자 유치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삼성, LG, 롯데 등 대기업과 협력업체들이 집단적으로 진출하면서 이 구조는 더욱 강화됐습니다. 교육, 문화, 종교, 체육 등 다양한 분야로 공동체 기능이 확장된 것도 이 시기의 특징입니다. 


Q. 최근 들어 한인사회가 축소된 주요 원인은 무엇입니까?


A. 가장 큰 요인은 경제 구조 변화입니다. 제조업 중심의 한국 기업이 축소되거나 철수하면서 주재원과 가족들이 함께 빠져나갔습니다.


여기에 2008년 금융위기, 한중 관계 변화, 코로나19 이후 인구 이동 감소 등이 겹쳤습니다. 항공 노선 축소와 비자 환경 변화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결과 현재 톈진 교민 수는 약 3000명 수준으로 크게 줄어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Q. 과거와 비교할 때 현재 한인사회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입니까?


A. 구조적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주재원 중심의 ‘임시 체류형 사회’였다면, 지금은 장기 거주자, 다문화 가정, 전문직 인력이 포함된 ‘다원적 공동체’로 변했습니다.


또한 조직도 다양해졌습니다. 상회, 체육회, 동문회, 종교단체, 각종 협회 등 네트워크가 촘촘해졌고, 생활 지원을 넘어 문화와 정체성 유지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위챗(微信·WeChat)과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한 정보 교류가 일상화됐고 IP TV 등을 통해 한국 뉴스를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습니다.


Q. 젊은 세대 감소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A. 공동체 활력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유학생과 청년층 유입이 줄어들면서 고령화가 진행되고, 상업과 문화 활동도 위축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단순한 인구 확대가 아니라, 전문성과 창의성을 갖춘 인재 중심의 질적 성장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합니다. 한중 청년 간 협력 플랫폼 구축도 필요합니다. 


Q. 개인적으로 가장 보람 있었던 일과 아쉬운 점은 무엇입니까?


A. 중국어를 활용해 톈진시 정부와 한국 기업 간 가교 역할을 했던 것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세무, 통관, 비자 문제 등 다양한 현안을 해결하며 교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었습니다.


반면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한인사회가 가장 활발하던 시기에 장기적인 기반 시설, 예를 들어 상설 회관 같은 것을 마련하지 못한 점입니다. 당시에는 충분히 가능했지만 단기 성과에 집중한 것이 아쉽습니다. 


Q. 톈진 한인사회의 향후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A. 과거와 같은 규모의 성장세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방향은 바뀌고 있습니다. 제조 중심에서 기술, 문화, 서비스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결국 핵심은 기업입니다. 기업 활동이 살아나야 교민사회도 다시 활력을 찾습니다. 앞으로는 ‘생산기지’가 아니라 ‘협력 플랫폼’으로서 톈진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이번 인터뷰는 톈진 한인사회가 단순한 교민 집단이 아니라, 한중 경제와 정책 변화 속에서 형성되고 재편된 역사적 산물임을 보여준다. 성장과 쇠퇴를 모두 경험한 이 공동체는 이제 또 다른 전환의 갈림길에 서 있다. 한때 중국 북방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톈진 한인사회는 이제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제조업 중심의 시대는 저물었지만, 기술·문화·서비스 협력 중심의 새로운 한중 교류 모델이 형성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서울일보/이윤낙 중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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