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카오룽(Kowloon·九龍) 지역의 한 저가형 슈퍼마켓에 시민들이 몰려 북적이는 모습. 최근 홍콩에서 이른바 ‘가난한 유령(穷鬼) 슈퍼마켓’으로 불리는 초저가형 슈퍼마켓이 급부상하며 지역 소비 지형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활비 도시로 꼽히던 홍콩에서 브로콜리·양배추 등 신선 식품을 10홍콩달러(약 1,700원) 안팎에 판매하는 매장이 등장하자, 시민들이 몰려 선반이 비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홍콩 언론에 따르면 일부 매장에서는 브로콜리 10홍콩달러 3개, 양배추 5홍콩달러 2개 수준의 가격이 형성되며, “평생 이런 가격을 볼 줄 몰랐다”는 반응이 나온다. 주요 상권인 센트럴(Central)의 명품 매장들이 한산한 반면, 저가 매장 앞에는 줄이 늘어서는 장면이 포착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한동안 중국 본토에서 유행한 ‘가난한 유령 슈퍼마켓’ 현상이 홍콩으로 확산된 것으로, SNS에서는 “100홍콩달러로 얼마나 살 수 있나” 챌린지가 등장할 정도다.
시장 변화의 핵심에는 본토 유통기업들의 적극적 진출이 자리한다. 중국 저가형 유통 브랜드 ‘호우터마이(好特卖·Hotmaxx)’는 지난해 홍콩에 진출해 2홍콩달러 콜라 등 파격적 가격으로 시장을 열었고, 현재 매장이 15곳으로 늘었다. ‘첸다마(Qian Dama·钱大妈)’는 폐점 시간대에 가격을 단계적으로 할인하는 방식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징둥(JD·京东)이 홍콩 로컬 체인 ‘지아바오(Jiabao·佳宝)’를 인수한 뒤, 전 매장 20% 할인, 노년층 월병 무료 제공 등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며 영향력을 확대했다. 홍콩 중소형 유통업계는 “대형 체인들도 경쟁 압박을 피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가격 경쟁은 즉각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홍콩의 대표 유통업체 파크앤샵(PARKnSHOP)과 웰컴(Wellcome)은 홍콩 시장을 오랫동안 양분해 왔으나, 최근에는 전 품목 할인, 본토 농장 직송, 콜드체인 도입, 온라인 배송 강화 등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현지 전자상거래 플랫폼 HKTVmall도 주문 규제 완화 및 쿠폰 지급에 나섰다.
현장에서는 “20년 전 가격으로 돌아간 듯하다”, “부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도 안심하고 장을 볼 수 있게 됐다”는 반응과 함께 “기존 고가 소비 방식이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가 공존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현상이 홍콩 소매시장 구조의 재편을 예고한다고 분석한다. 본토형 유통 모델의 확산은 저가 경쟁뿐 아니라 공급망·물류·디지털 운영 방식의 선진화를 수반하고 있어, 단순 가격 전쟁을 넘어 유통 효율성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홍콩의 한 유통업 관계자는 “지금 홍콩에서 핵심은 싸게 파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더 똑똑해진 시대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 가격과 서비스를 제시하는 것”이라며 “고급형과 실속형 양극화가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콩의 소비 시장이 ‘명품 소비의 도시’에서 ‘가성비 경쟁의 무대’로 변화하는 흐름은 향후 중국 본토–홍콩 경제 통합 심화 및 유통 생태계 재편과 맞물려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