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정상회담에서 인도와 영국 국기 앞에 나란히 선 지도자들. 인도‑영국의 CETA 체결을 상징하는 리더십의 단합된 모습”
【뉴델리=더플라자글로벌신문】인도가 오랜 기간 유지해온 보호무역주의 기조에서 벗어나, 포괄적 자유무역협정(FTA)을 활용한 전략적 개방 정책으로 급격한 전환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25년 7월 체결된 인도-영국 간 포괄적 경제무역협정(CETA)은 그 전환의 상징적 분기점으로 평가받는다.
그동안 인도는 철강, 화학, 전자 등 주요 산업에서 BIS(인도표준국) 인증, NOC(수입허가서) 요구 등 강도 높은 비관세 장벽을 가동해왔다. 예컨대, 2025년 6월 철강부는 HS코드 72류와 73류에 해당하는 철강 원재료 및 반제품에 대해 144개 이상의 IS(Indian Standards) 규격 준수를 의무화했다. 이는 사실상 철강 공급망 전 과정에 외국 기업의 진입을 제한하는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
철강 완제품 수입 역시 제철소 발급 NOC가 없으면 BIS 인증 면제가 어려운 구조다. 이와 같은 복잡한 절차와 비관세 장벽은 단기적으로는 자국 산업을 보호했으나, 장기적으로는 무역 파트너와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인도의 위치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실제로 인도의 FTA 활용률은 약 25% 수준에 머무르며, 체결된 협정조차도 실질적인 무역 확대 효과를 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인도는 기존 아시아 중심의 교역 체계에서 벗어나, 선진국 및 중동 국가들과의 포괄적 협정 체결을 통해 통상 기조를 다변화하고 있다. 2022년 아랍에미리트와의 CEPA, 호주와의 ECTA, 2024년 EFTA와의 TEPA 체결에 이어, 2025년 영국과의 CETA 체결은 이러한 변화의 결정판이다.
영국과의 CETA 협정을 통해 인도는 전체 수출품의 99%에 대해 무관세 혜택을 확보했다. 섬유와 보석 같은 전통 품목은 물론, 기계, 자동차부품, IT서비스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까지 혜택이 확대됐다. 또한 공공조달 시장 참여, 전문자격 상호인정, 사회보장세 이중 납부 면제 등 제도적 진전이 포함돼 단순한 상품 교역을 넘어 투자와 인력교류까지 포괄하는 현대형 통상 체계로 자리 잡았다.
민감 품목에 대해서는 단계적 개방이나 제외 방식을 택하면서도, 디지털 무역이나 서비스 분야는 과감히 개방한 점도 눈길을 끈다. 이는 인도가 기존의 일방적 보호주의를 넘어 균형 잡힌 개방 전략으로 전환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지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인도의 통상정책이 성숙기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UAE와의 CEPA는 시행 1년 만에 교역액이 20% 이상 증가하는 실적을 내며 실효성을 입증했다. EFTA와의 TEPA에는 1,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유치 및 100만 개의 일자리 창출 조건이 포함돼 산업정책적 활용도 주목된다. 이들 협정은 서비스, 투자, 지식재산권, 환경과 노동 기준, 디지털 무역 규범 등까지 포괄하며 다차원적 성격을 띤다.
과거 인도가 체결했던 아세안이나 일본 등과의 FTA는 대부분 상품 교역에 치중됐고, 원산지 기준도 단순한 RVC 35% 규정에 머물렀다. 이에 비해 최근 협정들은 RVC 40% 이상 또는 CTH(세번변경기준) 등 제품별로 엄격하게 설계되었고, 산업별 TRQ(관세할당제), 공공조달 개방, 기술이전 조건 등을 결합한 맞춤형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한국과 인도는 2010년 CEPA를 발효시켰지만, 관세 철폐율에 비해 활용률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최근 인도의 통상정책 변화에 맞춰 한국도 단순한 상품 교역 중심에서 벗어나, 디지털 무역, 투자, 기술협력 등으로 협정의 범위를 확대하고 새로운 전략적 FTA 구조 개선을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Make in India’ 정책을 연계하려는 인도의 구상에 한국 기업들이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할 경우, 새로운 기회를 놓칠 우려도 제기된다.
인도는 이제 자국 내 산업 보호를 넘어 세계 경제와의 전략적 연계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보호무역에서 다자간 협력 중심의 개방형 통상국가로의 전환은 단순한 무역 흐름을 넘어서, 인도의 산업·외교 전략 전반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