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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금화 역사, 3천 년 앞당겨졌다”…하라파 문명에서 ‘니슈카’ 사용 확인
  • 이윤낙 발행인
  • 등록 2025-08-22 16: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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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고학자 BR 마니, 인도 고대 경제사에 획기적 전환 제시

하라파 문명의 대표 유적 중 하나인 로탈(Lothal)과 모헨조다로(Mohenjodaro)에서 발견된 천공 원반형 금화 ‘니슈카’. 이 금화는 단순 장신구가 아니라 통화, 제사 제물, 무역 자산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인도 고대 경제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이미지: India Today, MarudharArts 제공) 

인도에서 사용된 금화의 역사가 기존 통설보다 3천 년 앞당겨졌다는 주장이 나왔다. 


인도의 대표적 고고학자인 BR 마니(BR Mani)는 최근 강연을 통해 하라파 문명과 베다 시대에 이미 ‘니슈카(Nishka)’라는 금화가 통화, 제물, 지위 상징으로 사용됐다고 발표했다. 이는 인도 금화의 기원을 기원전 3000년까지 끌어올리는 파격적인 주장으로, 고대 인도의 경제 및 문화 체계에 대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지난 8월 22일 뉴델리 국립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강연에서 마니는 “니슈카는 단순한 장식용 구슬이 아니라 고대 인도 사회에서 실제 거래와 제사에 사용된 금화였다”고 밝혔다. 이 동전은 중앙에 구멍이 뚫린 원반 형태로, 하라파 유적지인 모헨조다로(Mohenjodaro), 로탈(Lothal), 라키가르히(Rakhigarhi), 만디(Mandi) 등지에서 발견됐다.


그는 특히 우타르프라데시 서부의 만디 지역에서 발굴된 40개의 니슈카를 통해 “이 동전들은 통화, 무역 자산, 제사 제물, 사회적 지위 표시라는 다층적 기능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니슈카는 《리그 베다》, 《아타르바 베다》, 《파니니》의 문헌 등에서도 지속적으로 언급되어 왔으며, 베다 문화권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됐다는 문헌적 근거도 함께 제시됐다.


그동안 인도의 금화 사용은 쿠샨 왕조 시기(서기 1~3세기)에 본격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특히 비마 카드피세스(Vima Kadphises) 황제가 로마 데나리온에 착안한 ‘디나르(Dinar)’를 도입한 것이 첫 사례로 간주돼 왔다. 하지만 이번 니슈카 발견은 그 통설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다.


마니는 “부자의 부는 ‘100 니슈카’, ‘1000 니슈카’ 단위로 계산됐다”며, “이러한 개념은 단순한 금 장신구로는 설명될 수 없고, 정교한 경제체계를 반영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 발견이 인도의 고대 경제사, 특히 야금 기술과 무역 네트워크, 상징 문화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재정립하게 될 것으로 본다. 파드마 부샨 수상자인 고고학자 카일라쉬 나트 딕싯은 “마니의 연구는 인도 고대사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고 평가했으며, 국립박물관의 보존 책임자 실파 라투리는 “이 발견은 우리가 인도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계기”라고 말했다.


마니는 강연 말미에서 “니슈카는 오늘날의 암호화폐처럼 단순한 거래 수단이 아니라, 실물 자산으로서 당대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스며든 존재였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 고대 금화는 ‘단순한 구슬’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고도화된 경제 활동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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